안녕하세요. 저는 퀸잇 제품팀 PO 조현경입니다.
저는 마케터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제가 팔던 상품은 대출 상품이었는데요. 대출 상품이 고객에게 진짜 가치 있으려면 금리는 낮고, 한도는 높아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팔던 상품은 그 반대에 가까웠어요. 마케팅으로 고객을 데려와도, 고객은 결국 기대와 다른 조건을 마주하고 이탈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만들어진 제품을 잘 파는 일”만으로는 만들 수 있는 임팩트에 한계가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더 본질에 가까운 일을 하고 싶었고, 제품 자체의 가치를 바꾸는 PO라는 일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제가 라포랩스에서 PO로 일하며 겪은 성공과 실패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제가 스스로 잘하는 PO라고 착각하게 된 이유와, 그 착각이 깨진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내가 잘하는 PO라고 착각했던 이유
제가 처음 퀸잇에서 맡았던 큰 프로젝트 중 하나는 블랙프라이데이였습니다.
패션 커머스에서 11월은 1년 중 가장 중요한 달입니다. 아우터처럼 객단가가 높은 상품이 많이 팔리고, 대부분의 플랫폼이 큰 행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구매 전환율도 높아집니다. 여기에 마케팅 집행까지 커지면서 DAU도 함께 올라갑니다. 거래액을 만드는 세 요소가 모두 커지는 시기인 셈입니다.
그런 중요한 시기에 저는 블랙프라이데이 제품 서포트를 맡게 되었습니다. 당시 TF에 다소 늦게 합류했는데, 합류하자마자 수많은 개발 요청이 쏟아졌습니다.
복권 긁기 이벤트를 만들어달라, 찜하기 이벤트를 만들어달라, 상단 탭 구좌를 만들어달라, 기획전을 통째로 다시 개발해달라.
요청은 많았지만, 어떤 요청이 진짜 임팩트를 만들 수 있을지는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능 단위로 판단하기보다, 고객이 행사에서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결론은 단순했습니다.
고객은 행사에서 내가 사고 싶던 상품을 가장 저렴하게 사고 싶어한다.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는 혜택감과 할인감이었습니다. 전년도 고객 인터뷰에서도 같은 힌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고객을 만나보니, 우리가 가장 크게 전달하고 싶었던 블랙프라이데이라는 정보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고객에게 “빅세일과 블랙프라이데이 중 어떤 행사가 더 많이 할인해줄 것 같나요?”라고 물었을 때, 많은 고객이 빅세일을 선택했습니다. 심지어 전년도 블랙프라이데이에 구매한 고객도 “퀸잇에서도 블랙프라이데이를 하나요?”라고 되물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너무 당연한 고가치 정보가 고객에게는 충분히 전달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작게 검증하고, 크게 키우기
이 문제를 바로 블랙프라이데이에서 크게 해결하기 전에, 먼저 작은 비용으로 검증해보기로 했습니다.
블랙프라이데이 이전에 진행되던 월간 행사에서 “지금 행사 중입니다”를 알려주는 띠배너를 일부 가리는 실험을 했습니다. 동시에 출석체크나 복권 긁기처럼 이벤트성 피처가 거래액에 영향을 주는지도 확인했습니다.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이벤트성 피처는 거래액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상품 탐색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반면 행사 중임을 알려주는 화면을 줄였더니 거래액이 하락했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행사 중임을 끝까지 알려주면 어떨까?
블랙프라이데이 기간에는 앱에 들어온 순간부터 구매를 완료하고 앱을 닫는 순간까지, 고객이 “지금이 가장 싸다”는 메시지를 놓치지 않도록 구매 여정 전체를 설계했습니다. 앱 아이콘, 홈, 상품 상세, 장바구니, 주문서, 구매 완료, 알림톡까지 모든 접점에서 블랙프라이데이의 혜택감과 할인감을 전달했습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전환율은 10% 이상 상승했고, 거래 목표는 130% 이상 달성했습니다. 제품 단일 임팩트로는 퀸잇 역사상 가장 큰 성과 중 하나였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제가 꽤 잘하는 PO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고객이 진짜 원하는 것을 찾고, 작은 리소스로 검증하고, 검증된 가설을 크게 키울 수 있는 사람. 한 번 낸 성과를 반복 가능한 구조로 만들 수 있는 사람. 같은 개발을 반복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는 사람.
그때는 이게 잘하는 PO의 전부에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번의 성공을 반복 가능한 구조로 만들기
블랙프라이데이 성과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게 하려면, 행사 플라이휠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행사에서 고객이 좋은 경험을 하면 더 많이 구매합니다. 좋은 성과가 나면 행사에 참여한 셀러의 만족도가 올라갑니다. 만족한 셀러는 다음 행사에 더 좋은 할인율과 더 좋은 상품을 제공합니다. 그러면 고객은 다음 행사에서 더 좋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 플라이휠이 반복되면, 제품팀이 매번 같은 리소스를 쓰지 않아도 행사의 성과는 계속 커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저 경험과 셀러 만족이라는 두 축으로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유저 경험 측면에서는 “내가 원하는 상품을 빠르게 발견하고, 지금 가장 저렴하게 샀다”는 감각을 극대화하려 했습니다. 타이머 UI를 통해 지금 이 가격이 행사 기간에만 유효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했고, 어떤 상품과 요소가 상단에 노출되어야 전환율이 높아지는지도 반복해서 테스트했습니다.
셀러 만족 측면에서는 “퀸잇이 우리 브랜드를 정말 밀어준다”는 감각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행사 기간에는 앱을 켜자마자 행사 페이지가 강하게 노출되도록 구조를 바꿨고, 행사에 참여한 브랜드와 상품이 메인 화면에서 잘 보이도록 설계했습니다.
또한 기획전 담당자가 직접 UI 실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매번 제품팀 리소스가 들어가지 않아도, 어떤 쿠폰을 어디에 보여줄지, 어떤 상품을 상단에 배치할지, 어떤 배너가 더 높은 진입률을 만드는지 직접 테스트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블랙프라이데이를 준비하는 데 1-2주 가까이 밤을 새우기도 했지만, 이후에는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으로 주요 요청을 처리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여기까지는 정말 좋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프로젝트가 실패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블랙프라이데이 이후 약 6개월 동안, 제가 진행했던 거의 모든 프로젝트가 실패에 가까웠습니다. 그중 가장 크게 실패한 프로젝트는 4050을 위한 GPT 서비스였습니다.
당시 저는 기회의 크기를 크게 봤습니다. OpenAI가 한국의 4050 고객을 위한 GPT 서비스를 직접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군가 이 시장을 먼저 선점할 수 있지 않을까?
제 가설은 이랬습니다.
2030은 GPT를 인생 조언자처럼 쓰지만, 4050은 GPT를 검색 포털처럼만 쓴다. 4050이 GPT를 더 깊이 활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좋은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 어려움을 잘 해결하면 4050을 위한 GPT 시장을 만들 수 있다.
먼저 퀸잇 앱 내부에서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퀸잇 안에서 실험하면 별도의 유저 획득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적은 비용으로 가설을 검증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예시 질문을 제공하고, 전문가 페르소나를 입혀 건강, 자녀 관계, 사주 같은 고민을 물어볼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제품을 내보니, 절반 이상의 고객이 AI 챗을 고객센터처럼 사용했습니다. “반품 수거가 안 됐어요”, “퀸잇 전화번호 알려주세요” 같은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지표도 좋지 않았습니다. D1 리텐션은 거의 0%였습니다.
돌아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퀸잇이라는 서비스에 들어온 고객은 옷을 구경하고 구매하러 온 사람입니다. 그런 고객이 앱 안의 AI 챗을 눌렀을 때 기대하는 것은 쇼핑 과정에서 겪는 문제 해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생 조언자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획득 비용을 줄이기 위해 선택한 실험 무대가, 정작 검증하려던 가설과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별도 앱으로 나가도 문제는 남아 있었다
그래서 별도 앱 Tokit을 만들었습니다. 당시에는 5명이 일주일 정도만 쓰면 앱을 출시할 수 있었기 때문에, 빠르게 별도 서비스로 검증해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퀸잇 안에서보다 리텐션은 높아졌습니다. 같은 제품을 별도 앱으로 내보냈을 때 D1 리텐션은 약 7-10%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퀸잇이라는 패션 맥락이 문제였다는 점은 더 명확해졌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유저 획득 단가가 너무 높았습니다.
“4050을 위해 쉽게 만든 GPT”, “또래들이 하는 고민이 모인 GPT”, “갱년기 고민을 해결해주는 GPT”, “가장 똑똑한 모델이 답해주는 GPT” 같은 소구는 잘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장 반응이 좋았던 소구는 “오늘 사주 운세 어떨까?”였습니다.
여기서 첫 번째 위기가 왔습니다.
리텐션과 마케팅 효율은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믿었는데, 마케팅 효율이 좋지 않으니 가설에 대한 확신이 점차 떨어졌습니다. 런칭한 지 3년 넘은 퀸잇과 비슷하거나 더 높은 획득 단가를 보면서, 계속 만드는 게 맞는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처음 가졌던 핵심 가설까지는 끝까지 검증해보기로 했습니다. GPT, 아이폰, 테슬라 같은 제품이 출시 전 마케팅 테스트가 진행됐다면, 과연 효율이 좋았을까요? 아니었을 거 같아요. 직접 써봐야 가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여타 모바일 제품과는 달리 마케팅 효율이 좋지 않더라도 리텐션이 좋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매일 코디를 조언받고, 일상의 자잘한 고민들까지 GPT와 나누는 헤비유저였기 때문에 이 방향에 대한 믿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통화 포맷을 실험했습니다.
4050에게 익숙한 통화 방식이라면 더 편하게, 더 길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습니다. 더 깊은 프롬프트가 들어가면 더 좋은 답변이 나오고, 결국 고객 만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유저는 통화를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대화를 시작한 유저 중 80%는 채팅을 선택했고, 통화한 유저의 D1 리텐션은 0%였습니다.
이 시점에서 “4050이 GPT를 인생 조언자처럼 쓰는 데 어려움이 있고, 우리가 그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다”는 방향성은 드롭했습니다.
빠른 실행보다 먼저 필요한 것
이 프로젝트들을 지나며 제가 깨달은 것은, 빠르게 실행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당시 제 방식은 대체로 이랬습니다.
큰 기회를 발견한다. 직관으로 가설을 세운다. 최소 스펙으로 빠르게 검증한다. 반응을 보고 다음 가설로 넘어간다.
겉으로 보기에는 린한 방식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단계가 빠져 있었습니다.
문제 정의였습니다.
4050 GPT 시장이 크다는 기회는 보았습니다. 하지만 4050 고객이 실제로 어떤 상황에서 GPT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 왜 그렇게 쓰는지, 어떤 어려움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지 충분히 관찰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를 정의하기 전에 가설부터 세웠고, 그 가설에 맞춰 유저를 보려 했습니다.
지금 다시 돌아간다면 다르게 할 것 같습니다.
먼저 고객을 관찰하고, 데이터를 보며 현상을 확인합니다. 현상 안에서 반복되는 단서를 찾습니다. 그 단서를 바탕으로 고객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어려움 때문에 원하는 행동을 하지 못하는지 정의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가 얼마나 크고, 얼마나 고통스러운 문제인지 판단합니다.
그 다음에야 가설을 세우고 반복해서 실험으로 검증합니다.
뷰티 프로젝트를 다시 대하는 방식
이후 저는 다시 뷰티 구매자 획득 미션을 맡게 되었습니다. 사실 뷰티에서도 이미 많은 실패가 있었습니다. 뷰티 상품 노출을 강화하거나, UI를 바꾸거나, 무료배송과 체험단과 증정품을 강조하는 실험을 했지만 대부분 기대한 효과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과거에는 고객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직관 기반으로 빠르게 실행했습니다. 그래서 실패해도 왜 실패했는지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번에는 다르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리빙과 뷰티에서 “최저가”를 알려주는 실험을 했을 때, 리빙에서는 거래액이 올랐지만 뷰티에서는 효과가 없었습니다. 과거의 저라면 바로 다음 UI 가설로 넘어갔을지도 모릅니다.
이번에는 먼저 관찰했습니다.
코스트코에서는 증정품 유무 때문에 고객이 구매하려던 제품을 바꾸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올리브영 매대에서는 증정품이 상품 옆에 잘 보이도록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오프라인 뷰티 구매에서는 증정품이 단순한 부가 혜택이 아니라, 구매 판단을 바꾸는 중요한 정보로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퀸잇 내부를 보니 증정품 정보는 상품명, PDP 일부 영역, 상세 이미지 등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고객은 이 가격에 무엇까지 포함되는지 한눈에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최근 30일 기준 뷰티 거래액 중 증정품이 붙은 상품에서 발생한 거래액은 절반 이상이었습니다.
이제 문제는 “증정품을 더 잘 보여주자”가 아닙니다.
뷰티 고객은 가격을 판단할 때 본품 가격뿐 아니라 증정품까지 포함한 전체 혜택 구성을 보고 좋은 딜인지 판단하려 하지만, 현재 퀸잇에서는 그 정보가 흩어져 있어 실제 혜택을 빠르게 인지하지 못한다.
이렇게 문제를 정의하면 솔루션도 달라집니다. 증정품을 단순히 별도 영역에 노출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가격을 판단하는 순간에 함께 이해할 수 있도록 가격 영역에 증정품 정보를 연결하는 방향으로 실험을 설계하게 됩니다.
같은 “증정품”이라는 소재라도,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솔루션이 나옵니다.
잘하는 PO라는 착각 이후
블랙프라이데이 성공 이후 저는 제가 잘하는 PO라고 생각했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찾고, 작게 검증하고, 크게 키우고, 반복 가능한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중요한 역량입니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빠르게 실행하기 전에, 정말 좋은 문제를 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좋은 문제는 직관만으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고객 관찰과 데이터, 반복되는 단서, 문제의 크기와 고통의 강도를 통해 정의되어야 합니다.
좋은 PO가 되는 일은 빠르게 많이 실행하는 일이 아니라, 풀어야 할 문제를 더 정확히 정의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적은 낭비로 가장 큰 임팩트를 만드는 일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직도 그 과정을 배우는 중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성공 사례보다 실패 사례가 더 자주 저를 가르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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